등록일 : 2024-10-1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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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그야말로 한 편의 국민적 감동 드라마였다. 특히, 작가의 부친 한승원 선생이 현재 고향 장흥에 거주하며 집필활동을 하고 있고, 그 또한 광주 태생이란 사실은 호남인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.
부전자전(父傳子傳)일까. 주지하다시피 작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선생은 대한민국의 원로 소설가다. 소설을 쓰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한강 작가는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. 따라서 장흥은 부녀 작가의 문학적 원형질의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 아닐 것이다. 그 혈통의 뿌리가 장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.
지난 4일 작가 한승원-한강의 문학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장흥 회진에서 ‘회령포 이순신 축제’가 열렸고, 오는 18일엔 울돌목에서 ‘명량대첩축제’가 개최된다. 장흥 회령포는 정유재란 때 칠천량 전투에서 왜군에게 대패하고, 사실상 와해 된 조선 수군을 이순신 장군이 재건해 명량해전을 준비한 곳이다.
명량대첩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중과부적의 열세 속에서,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단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 함선과 1만여 명의 적을 몰살시키는 전과를 거뒀다. 장흥에서 출발한 12척에 울돌목에서 추가한 1척의 배로 어떻게 백 서른세 척을 이겼을까?
명량이 일궈낸 승리에는 이순신과 남도 백성들이 중심에 있다. 남의 땅을 넘어 살육의 칼날을 들이대던 침략 앞에서 남도의 백성들이 내민 무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요, 작은 일상을 일구고 지키고자 한 소박한 꿈이었다. 그 믿음과 꿈은 이순신을 만나 큰 물길이 돼 ‘승리의 바다’를 이루었다.
명량대첩축제가 열리는 해남 우수영과 진도 녹진이 마주한 바다는 ‘물이 운다’라고 하여 이 물목을 ‘울돌목’이라 불렀다. 이곳에 오면 생사와 존망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을 만한 한 줄기 역류가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. 삶과 죽음이 뒤엉켜 부딪히는 사지에서, 순류와 역류의 혼재 속에서 펼쳐진 이곳에서 인간 이순신의 고뇌와 수많은 전라도 백성들의 삶을 미뤄 짐작해 본다.
427년 전, 이 땅의 사람들이 지키고자 한 소박한 일상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꿈은 이제 ‘평화’라는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로 승화됐다. 이것이 바로 저 명량의 물길 앞에서 우리가 다시 서야 하는 까닭이다.
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이어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‘평화의 가치’가 전 세계인의 뇌리에 공감을 준 것이 아닐까 한다. 한강 작가는 국제적으로 전쟁이 있는 시기에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. “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,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 판국에 무슨 잔치를 벌이겠느냐”는 게 이유다. 물론 작품도 훌륭하지만, 작가적 자세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인다.
동북아의 역사 문제 속에는 우리 시대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인권과 평화라는 주제가 남아 있다. 또한 인접국과의 상호번영이라고 할 수 있다. 동북아 바다를 인접한 나라들과 협력의 과제는 여전한 숙제다. 명량해협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가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국난을 극복하고, 민초(民草)의 역할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준 기적의 스토리다.
한강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진 10월, 울돌목은 승리의 바다를 넘어 평화의 세계적 가치로 다가온다. 위기 속에서도 희망을 떠올렸던 명량대첩의 역사적 현장, 전남 세계관광문화대전의 대표축제가 열리는 울돌목에 서 있다면, 삶의 에너지를 얻어 가는 감동의 역사적 시간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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출처 : 한강의 노벨상과 명량대첩의 평화의 가치 / 박창규 - 광주매일신문 (kjdaily.com)